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명량해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천만 관객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면서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과 명량 대첩에 대해서 알아보고 더불어 영화 속 기억에 남는 명장면을 소개하겠습니다.

최고의 지도자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은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업적은 대단합니다. 1545년 충청도 아산에서 태어난 그는 무예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 당시 조선은 무과는 경시하고 문과를 우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여러 번 과거 시험에 응시했지만 낙방을 한 그는 결국 무과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여 군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76년에 군대에 입대한 그는 여러 군사 작전에 참여하며 실전 경험을 쌓아갔고, 특히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있을 때는 해적을 소탕하는 큰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군사적 지략과 탁월한 리더십, 행정 업무 처리 능력을 인정받아 1591년 마침내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의 위치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곳은 그 당시 조선 해군의 가장 중요한 기지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늘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이것이 임진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해군은 여러 차례 대승을 거두었지만, 모든 사람이 그의 승리를 기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조선은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어 분쟁이 심하였고, 이 두 파벌 사이에서 장군은 모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원균과 같은 동료 장군들의 질투와 비난으로 결국 그는 파면되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가 1597년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벌써 6년째, 조선의 땅은 황폐해지고 일본군의 기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한양을 치고 중국으로 넘어갈 계획을 가진 일본은 대규모 수군을 조선으로 다시 보냅니다. 이처럼 상황이 더 악화되자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며 풀어줍니다. 백의종군한 그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을 모아 보지만 이미 조선의 해군에는 군사도 전함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1597년 겨우 12척의 배로 일본의 수군을 무찌르고 대승을 거둔 전투가 명량대첩입니다.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이순신 장군은 그의 존재만으로 일본군의 사기를 꺾어버렸습니다.
기적의 승리 명량대첩
1597년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해상 방어선을 구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미 원균의 패배로 조선의 수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겨우 12척의 배만 남아있었습니다. 일본이 330척이라는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조선으로 향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장군은 명량해협에서 일본군을 맞이하기로 합니다. 12척 대 300척의 대결. 누가 봐도 무모한 전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명량해협의 좁은 지형적 특징을 이용하기로 전략을 세웁니다. 이 해협은 매우 좁고 물살이 굽이치는 곳으로 큰 함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매우 빠르고 강한 조류 때문에 큰 배는 조작이 힘든 곳입니다. 전략가 이순신 장군은 일본의 함대를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해서 조선 수군을 해협의 입구에 배치했습니다. 조류가 바뀌는 그 시점에 장군은 일본 함대를 공격하하는 명령을 내렸고, 해협 안으로 밀고 들어온 일본군은 조류에 휩싸이며 전멸하게 됩니다. 좁은 해협과 빠른 조류의 물살을 이용한 그는 단 12척의 배로 300척의 일본군을 무찌르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명량대첩의 대승은 단지 전투에서 이겼다는 의미를 넘어서 임진왜란의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명장면 세 가지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는 이제까지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사뭇 다릅니다. 생생한 전투 장면과 배우들의 열연이 만들어낸 많은 영화 속 장면들 중에서 저의 기억에 남는 명장면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1. 장군의 귀환 : 이순신 장군이 정치적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고 온갖 고문과 부당한 대우를 겪은 뒤 다시 조선 수군의 장군으로 복귀하는 장면은 인간 승리 그 이상의 감동을 줍니다. 카메라는 장군의 귀환 소식을 듣고 길가에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며, 그들의 표정에서 기대와 환희로 가득 찬 감정을 보여줍니다. 드디어 말을 탄 장군의 모습이 보이자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합니다. 그 환호 속에서도 장군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진지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 속에는 조선의 땅과 백성들을 꼭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와 책임감만이 들어 있습니다.
2. 명량 해협에서의 전투 장면 : 단 12척의 배로 적군의 수백 척의 배를 맞이하여 승리를 거둔 전투는 세계 역사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록적인 사건입니다. 이 역사적 장면은 이순신 장군이 전략을 짜고, 수군을 훈련시키는 모습에서 시작됩니다. 수적 우위에 자신감 가득 찬 왜군은 조선 수군을 무시하며 전투에 임합니다. 전투가 시작되면서 조선 수군은 백병전과 화약으로 왜군을 공격하고, 장군이 탄 배는 선두에 서서 군사들을 지휘합니다. 조류가 변하는 시점에 왜군의 배를 좁은 해협으로 유인한 뒤, 조선 수군은 집중 공격을 가합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왜군은 서로 충돌하며 대규모 함대는 전멸하게 됩니다.
3. 승리의 마지막 장면 :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고요한 바다 위에는 왜군의 잔해가 널려 있습니다. 카메라는 배의 갑판 위에 당당히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비춥니다. 그의 표정에는 길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의 힘든 준비 과정부터 치열한 전투 장면까지 빠르게 보여주며 영화는 관객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파도 소리와 함께 절벽과 해안가에 모여든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은 서로 눈물을 흘리며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기뻐합니다. 멀리 해변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들을 애도하는 마음도 느끼게 해 줍니다.
리뷰를 마치며
영화 ‘명량’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지략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제작한 김현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 시리즈 3편을 제작한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첫번째로 제작된 영화가 ‘명량’입니다. 이순신 장군역을 맡은 최민식, 일본군 구루지마역의 류승룡, 와키자키역의 조진웅 등 명배우들의 연기 대결은 현실감과 긴장감을 최고조로 보여주며, 영화의 흥행에 큰 몫을 다했습니다. 영화는 천만 관객이라는 흥행 성공뿐만 아니라 각종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등을 휩쓸며 작품성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음 시리즈 ‘한산’과 ‘노량’의 영화를 기다리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뜨거운 감동과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영화 ‘명량’의 리뷰를 마칩니다.